2025-02-08

어장관리남(또는 어장관리녀)이 만들어지는 과정

"크랜포드"라는 2007년 BBC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1842년 영국의 보수적인 시골 동네 크랜포드가 배경이고. 이 동네의 저택에 사는 지주 마님으로부터 찢어지게 가난한 오두막집 사람들까지, 다양한 계급의 동네 사람들(주로 여자들)의 삶이 나오는데 꽤 재미있다. 

한 에피소드로 해리슨이라는 훈훈한 젊은 의사가 한순간에 어장관리남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게 친절하고 예쁜 여자가 어장관리녀로 낙인찍히는 과정이랑 매우 똑같다. 

가난하지만 나름 능력 있는 의사 해리슨이 보수적이고 말많은 마을 크랜포드에 의사 조수로 오게 되고, 젊은 미혼남이라는 이유로 그는 동네 여자들의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된다. 사실 해리슨은 크랜포드에 오자마자 이미 목사의 딸 소피에게 한눈에 반해서 청혼을 해도 된다는 허락도 거의 받은 상태였다. 다른 여자분들에게는 그냥 환자니까, 또는 자기 하숙집 주인이니까, 그냥 예의상 친절하게 응대를 했을 뿐인데, 다들 해리슨이 자기를 좋아해서 곧 자기에게 청혼을 할거라고 오해하고 난리쳐서, 어느 순간 해리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네의 "어장관리남"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목사는 대노하고, 소피에게도 차이고,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아서 마을에서 쫒겨날 지경이 된다..

1842년 얘기인데, 왜 이렇게 현대적인건지 ㅎㅎ 

친절하고 예쁜 여자가 (예를 들어, 대학교 새내기 여학생 또는 갓 입사한 여자 신입) 걍 원래 친절한 사람이라서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니까, 주위의 모든 남자들이 그녀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다가, 다들 모여서 자기들이 제각각 착각한걸 깨닫는게 아니라, 그 여자가 어장관리녀라고 낙인찍고 욕하는 그런 상황.

크랜포드에서는 해리슨은 결국 누명을 벗고 소피와 다시 잘 되지만, 현실에서는 그 친절하고 잘 웃던 여자분은 없어지고 이제는 안친절한 "어장관리녀"가 남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