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가 필요한 돈 이상으로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나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면서 필요한 이상으로 자본을 쌓으려는 이유는?
이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은, 1905년 당시에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더 발달했던 미국이나 네덜란드 등의 지리적인 위치가 기독교 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들이라는 점에서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독교의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 영원한 내세에 대한 개인들의 관점의 변화가, 현대 자본주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교회에서 행해지는 주술적 행사를 통해서 교인들이 회개의 기회를 얻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개념이 깨어지면서, 유럽 교회와 성직자의 영향력은 약화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문제의 칼뱅주의의 "예정론"--누가 구원을 받을 지는 이미 신이 정하였다는 개념--이 생겨난다. 교회 조직의 "도움"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 기독교에서의 구원의 문제는 철처히 신과 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된다. 개개인의 신자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존재로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것이냐는 끊임없는 질문을 시작하게 된다.
16-17세기의 개신교 신자들은 현세에서의 "성공적인" 삶이 선택의 "증거"라고 믿기 시작한다. 여기에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청교도적 믿음이 추가된다. 영원한 내세를 꿈꾸며 속세에서의 "성공"으로 모여진 자본은, 금욕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된" 삶 속에서 점점 쌓여가게 된다.
충분히 모여진 자본과, 노동을 신이 주신 소명으로 성실하게 수행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고용자들과, 성실히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신이 주신 소명으로 생각하는 종교적 고용주, 이 세 요소들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종교적 세계관의 영향력은 소멸된 지 오래이지만, 그 정신적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